규장각도서 중 ‘의가류(醫家類)’의 형성과 추이

History of the ‘Medical Authors(醫家類)’ Category in the Kyujanggak Archives

초록

정조대 규장각 창설 이후 수장 대상인 조선본·중국본 도서에 관한 서목(書目)이 작성되었는데, 의학 관계 도서는 경(經)·사(史)·자(子)·집(集)의 4부(四部) 중 자부(子部) 내 ‘의가류(醫家類)’ 항목에 수록되었다. 의가류는 중국에서 전통적으로 경시되는 편이었다가 『사고전서(四庫全書)』의 편찬과 더불어 농가(農家)와 함께 중시되기 시작하였다. 조선에서도 이러한 흐름에 따라 의가를 병가(兵家)·농가와 인접하여 배치하되 중국의 체제를 그대로 모방하지는 않고 조선의 실정에 맞게 변형시켰다. 정조대 서목 내 의가류 수록 도서를 보면, 도서의 실제 저자가 아니라 간행지를 기준으로 조선본·중국본을 구별하고 있으며, 분야는 전통 한의학에 국한되고 서구 의학의 한역서(漢譯書)는 배제되고 있다. 이러한 규장각 도서 관리 체제는 고종대 초반까지도 유지되었으나 후반기인 대한제국기로 가면 4부 분류 체제가 무너지고 서가별로 도서들이 무원칙하게 흩어짐과 더불어 일부 도서가 유실되는 등 그 체계가 다소 흔들리기 시작하고 있다. 한편, 개항 이후 ‘개화정책’의 시행에 따라 서구 문물의 수용이 추진되면서 한역(漢譯) 서학서(西學書)들이 유입되기 시작하였고 의서(醫書) 또한 여기서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고종은 이러한 목적으로 수집한 도서를 수시로 ‘내하(內下)’의 형태로 규장각에 내려줌은 물론 ‘집옥재(集玉齋)’라는 서재에 이들을 보관하였는데, 관련 서목을 보면 청의 의서와 더불어 한역 서양 의서들 또한 상당수 발견되고 있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일제는 황실 재산에 대한 정리 작업을 시행하면서 규장각 도서를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1909년에 ‘제실도서(帝室圖書)’를 조성하였는데, 해당 서목에서 자부 내 의가류 도서를 찾아보면 이전의 정조대·고종대 서목에 기재된 도서 중 상당수의 누락이 발견됨과 동시에 이전 서목에 없던 도서들이 등장하는 경우도 나타난다. 그리고 이 서목은 집옥재 소장 도서가 포함되어 있지 않는 등 상당히 불완전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이 시기 대한제국 학부(學部)가 규장각 도서를 이관하면서 작성한 서목을 살펴보면, 전통적인 4부 체제에서 서양의 10진 분류로 전환하는 과도기적인 모습이 발견되기도 하며, 의가류 도서 또한 일부 수록되어 있다. 일제 강점 이후 조선총독부 취조국(取調局)이 규장각 도서 정리를 관할하면서 원칙을 새로 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서목을 작성하는데, 분류체계로 보면 농가·병가와 의가가 함께 묶이게 되었다. 수록 의가류 도서를 보면, 특히 중국본 서목에서 집옥재 도서가 포함됨은 물론 한역 서양 의서를 위시하여 이전 서목에서 보이지 않던 도서들의 대거 합류가 발견된다. 이후 다시 참사관 분실(參事官分室)로 도서가 이관되면서 일시 서목의 내용이 부실해지기도 하지만, 도서 번호가 부여되고 재분류 작업을 거쳐 1921년 『조선총독부고도서목록(朝鮮總督府古圖書目錄)』이 간행되며 규장각 도서 정리 사업은 일단락을 맞게 된다. 이와 함께 규장각도서 중 ‘의가류’의 기본 틀 또한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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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규장각도서 중 ‘의가류(醫家類)’의 형성과 추이
제목 (타언어)
History of the ‘Medical Authors(醫家類)’ Category in the Kyujanggak Archives
저자
민회수
DOI
10.22943/kyujg.2026..68.010
발행일
2026-04
유형
Y
저널명
규장각
68
페이지
327 ~ 3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