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화폐개혁과 인천전환국(仁川典圜局)

The Monetary Reform of Joseon and the Incheon Mint Bureau (Jeonhwanguk)

초록

은본위제에 입각한 조선의 근대적 화폐개혁은 1891년 8월 주일 공사 김가진과 전환국 幇辦 안경수를 일본에 파견하면서부터 비롯되었다. 김가진은 제58국립은행 은행장 오미와 초베에(大三輪長兵衛)와 초빙계약을 체결하고 오미와를 통해 소개받은 자본주 오사카제동회사(大阪製銅會社) 사장 마스다 노부유키(增田信之) 25만 엔 차관계약을 성립시켰다. 전환국 고문격인 會辦에 임명된 오미와는 화폐개혁의 전권을 요구하였으나 조선 정부는 이를 제약하면서 그와 협의를 통해 1891년 11월(음력) 화폐개혁의 법적 근거인 ‘대조선국화폐조례’(신식화폐조례)를 공포하였다. 이 조례에 따라 새로운 은화와 동화를 주조하기 위해 물자 수송에 편리한 인천으로 전환국을 옮겼다. 일본 정부는 경제적 침투를 쉽게 할 수 있는 통화동맹(monetary union)을 실현하고자 인천전환국 설립 자금 2만 700여 엔을 지원하였다. 전환국을 인천으로 옮겨 신화폐를 주조하기 시작하자 조선 정부는 전환국 조직을 확대 강화하고 ‘대조선국화폐조례’ 이후 변경된 사항을 반영하여 1892년 11월(음력)에 ‘典圜交換節目’을 공포하였다. 신식화폐가 4종에서 5종으로 늘어나고 무엇보다 화폐 문양이 태극 문양에서 오얏꽃 문양으로 변경됨에 따라 이미 공포한 ‘대조선국화폐조례’를 수정하여 「전환ㆍ교환절목」을 제정 공포한 것이다. 이 화폐 문양의 변경은 고종이 주도하였다. 화폐개혁에 따라 인천전환국에서 5년 동안 4천만 량(800만 엔)의 신화폐를 주조하여 발행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는 계획대로 진척되지 않았다. 인천전환국에서 20여만 엔 정도만 주조하였으며 세 차례 발행을 시도했으나 이것도 모두 무산되었다. 입춘 길일인 1893년 1월 3일(음력)에 발행하려는 제1차 시도는 조선의 화폐주조권을 장악하려 한 마스다의 월권 행사로 좌절되었다. 마스다와 해약 후 음력 1893년 7월 25일 고종 탄신절에 발행하려는 2차 시도도 오미와와 안경수의 대립으로 무산되었다. 오미와 해임 후 인천전환국에서 좀 더 많은 은화를 주조하여 1894년 여름에 발행하려는 제3차 시도도 청일전쟁의 발발로 무산되었다. 비록 3차례 발행 시도는 모두 무산되었으나 발행 시도를 주도한 이는 고종이었다. 청의 개입, 국내 보수파의 반대, 화폐개혁과 양립할 수 없는 계속되는 민씨 척족의 평양전 주조에도 불구하고 세 차례나 단행된 발행 시도를 통해 화폐개혁에 대한 고종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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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조선의 화폐개혁과 인천전환국(仁川典圜局)
제목 (타언어)
The Monetary Reform of Joseon and the Incheon Mint Bureau (Jeonhwanguk)
저자
김흥수
DOI
10.23033/inhaks.2026..80.010
발행일
2026-02
유형
Y
저널명
한국학연구
80
페이지
333 ~ 3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