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일전쟁 이전 일본 민간의 조선인식 ― 신문기사를 중심으로 ―

Japanese Civilian Perception of Korea before the Sino-Japanese War : A Study Pursued by Focusing on Newspaper Articles

초록

본고에서는 1880년대 이후 청일전쟁 시기까지 일본 민간의 조선인식을 신문 언론기사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중에서도 자유민권운동 계열의 신문을 대상으로 각 매체의 기사 내용과 성향을 분석함으로써 일본정부의 정책과 대비해 청일전쟁 이전 민간 측의 조선인식이 어떠했는지 검토하였다. 자유민권운동 세력은 당시 일본정부나 친정부계 언론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스스로의 주장을 전개했다. 입헌개진당 계열의 《마이니치신문》은 1880년대에 들어 러시아의 세력 확대를 우려하여 조선의 ‘독립’을 중시했으나 이후 임오군란, 갑신정변을 거치며 서양 열강과의 협조, 청일 협조를 통해 조선중립화 등 조선의 ‘자립’을 꾀하려는 입장을 취했다. 1890년대에 들어 조선을 둘러싼 국제정세가 바뀌게 되자 조선인식이 크게 바뀌어 ‘맹주’의식을 드러내게 되었다. 자유당의 기관지 《자유신문》의 논조는 조선으로 팽창을 목표로 한 《시사신보》와 달리 현상유지론적이었다. 그러나 청불전쟁을 경계로 《자유신문》의 대외론도 청일 대결론으로 바뀌었다. 1890년대에 들어서도 《마이니치신문》처럼 급격히 동양맹주론으로 전환하지는 않았다. 일본의 국력 신장에 대한 소극적인 평가를 바탕으로 대외정책에서 현실주의적 신중론을 취했다고 할 수 있다. 오사카 지역 민권파가 결성한 입헌정당의 기관지인 《일본입헌정당신문》은 1880년대 초 일본과 조선 사이의 관계를 불평등조약을 강제한 서양 열강과 일본의 관계에 비정하여 상대화함으로써 조선에 대한 강경론에는 정당성이 없다고 보았다. 유럽의 정세를 포함한 국제적인 시야에서 전쟁반대론, 조선포기론, 내정불간섭론을 제시하고 냉정한 대응을 모색한 것이 특징이다.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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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청일전쟁 이전 일본 민간의 조선인식 ― 신문기사를 중심으로 ―
제목 (타언어)
Japanese Civilian Perception of Korea before the Sino-Japanese War : A Study Pursued by Focusing on Newspaper Articles
저자
방광석
DOI
10.15532/kaja.2025.02.142.269
발행일
2025-02
저널명
일본학보
142
페이지
269 ~ 2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