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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의 준마에서 천상의 서수(瑞獸)로: 조선 후기 말 부족 현실과 태조 팔준도(太祖八駿圖)의 재해석
초록
본 연구는 팔준도(八駿圖)가 세종(世宗, 재위 1418-1450년) 시대에 창안되어 조선 후기에 다시 재현되기까지 어떠한 의미 변화를 겪었는지 규명한 글이다. ‘팔준’ 은 조선 태조(太祖, 재위 1392–1398)가 전쟁에서 함께한 여덟 마리 말을 지칭한다. 선행 연구들은 조선 후기에 제작된 팔준도가 세종 시대의 원형을 계승했다는 전제를 대체로 공유해 왔다. 그러나 세종 시대의 기록(『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안견의 〈팔준도〉 제작)과 현존하는 조선 후기 작품(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화첩 및 병풍본 《팔준도》) 사이에는 도상적 차이가 분명하다. 이러한 도상적 차이는 단순히 모사 과정에서 일어난 변형이 아니라 팔준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반영한다. 이 연구는 팔준도에 대한 인식이 ‘전투의 공훈마(功勳馬)’에서 ‘천명(天命)을 표상하는 서수(瑞獸)’로 전환되었다는 가설에 바탕을 두고 있다. 연구 방법으로, 필자는 첫째 세종 시대의 회화적 전거인 당(唐) 태종(太宗) 의 소릉육준도(昭陵六駿圖)와 숙종 대 이후 참조된 목왕팔준도(穆王八駿圖)를 중심으로 도상 비교를 수행하였다. 둘째 조선 후기의 사회·경제적 맥락, 특히 양난 이후 말 수급의 곤란과 국영 목장의 운영(강화 진강, 함흥 도련포, 제주 목장)을검토하여 국가적 수요가 도상 변화에 미친 영향을 추적하였다. 셋째 현존하는 팔준도(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화첩본 《팔준도》, 병풍본 《팔준도》)를 조선 초기의 기록과 비교하여 그 도상적 차이를 분석하였다. 세종 시대의 기록을 살펴보면 안견의 〈팔준도〉는 소릉육준도를 본보기로 하여, 전투마로서의 도상(圖像)인 마구(馬具)를 갖추고 뛰는 모습, 화살을 맞은 상흔 등을 그려냈을 것을 추정할 수 있다. 이는 태조와 함께 생사고락을 함께한 공신의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조선 후기의 〈팔준도〉는 고삐와 안장 없이 방목된 말들을 묘사하고, 화려한 문양을 더해 건강하고 아름다운 준마의 형상을 부각하였다. 또한 말의 색깔과 특징은 『용비어천가』의 기록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조공과 대외 교역에서 선호되던 다양한 화마[花馬, 月羅馬] 형태를 반영하여 시대적 취향을 가미했다. 이처럼 팔준도는 신화적 기억과 현실적 필요가 결합된 회화적 전략을 통해 조선 후기 왕권과 사회의 이상을 담아낸 결과물이었다. 팔준마에 대한 상징적 의미는 단지 그림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강화 진강 목장과 함흥 도련포 목장의 보존, 그리고 제주마를 팔준마로 인식하려는 노력은 모두 명마 재생산과 국가 재건의 열망을 반영한 것이었다. 팔준도는 과거 태조 창업의 영광을 기리는 동시에, 조선 후기 쇠락해 가던 국내 말 생산과 왕실 위상을 회복하고자 하는 실질적 과제의 매개체로 기능했다. 결국 조선 후기 팔준도는 과거를 단순히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적 요구 속에서 고대 신화를 현실에 맞게 새롭게 변주(變奏)한 문화적 산물이었다.
키워드
- 제목
- 전장의 준마에서 천상의 서수(瑞獸)로: 조선 후기 말 부족 현실과 태조 팔준도(太祖八駿圖)의 재해석
- 제목 (타언어)
- From War Horses to Auspicious Symbols: Reinterpreting King Taejo’s (r. 1392-1398) Paljundo amid Late Joseon’s Horse Crisis
- 저자
- 유재빈
- 발행일
- 2025-11
- 유형
- Y
- 저널명
- 미술사와 시각문화
- 호
- 36
- 페이지
- 64 ~ 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