近代 中國의 博覽會 認識

The Recognition of International Exposition in Modern China

초록

본 논문에서는 서구 각국이 근대화의 상징인 박람회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였던 것들을 중국이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였는지 살펴보았다. 소극적인 태도로 박람회를 외면하였던 청 정부와 청 정부를 대신하여 박람회 사업을 주관하였던 해관의 태도, 또 박람회를 직접 참가하였던 외교관원들의 견문록 및 개인 차원에서 남긴 박람회 관련 기록 등을 중심으로 하여 근대 중국인들이 남긴 박람회의 이미지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박람회는 경제적 교류가 이루어지고 각국의 문명이 교류하며, 지식이 확장되는 장소이다. 박람회의 성공적인 참여는 발달된 상품 경제를 기반으로 하여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官商간의 긴밀한 협력이 전제되어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중국의 상황은 전혀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박람회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내지 못했다. 서양 각국이 기계기술문명의 신세계가 도래하였음을 널리 알릴 때 중국은 전통 수공예품을 전시하면서도 여전히 자신들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자만에 빠져있었다. 또한 자신들의 박람회를 해관의 서양인들에게 맡김으로써 세계를 향해 중국의 진면목을 알릴 기회를 잡지 못하였다. 해관의 개인의 성취, 명예 또는 제국주의 국가의 이익을 우선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박람회 참가의 경험이 쌓여갈수록 중국의 박람회에 대한 인식도 조금씩 변화하였다. 청조를 대표하여 박람회에 참가하였던 李圭, 郭嵩燾, 馬建忠 등은 중국 문명에 대한 깊은 자부심을 표현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서양 문물을 바라보았다. 1890년대 주로 활동하였던 鄭觀應, 陳熾 등은 비록 직접 서양의 박람회를 견문하지는 않았지만 상업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여 근대화 과정에 박람회가 필수적임을 적극 소개하였다. 점차 그들에게 박람회는 더 이상 ‘신기한 것을 경쟁하는 무익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새로운 시선은 완고한 청 정부의 태도를 변화시키는 데에도 일조를 하였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청 정부의 태도를 바꾸는 데는 지식인들의 박람회에 대한 소개 및 인식변화라는 요소 이외에도 당시 정치적, 경제적, 외교적 원인 또한 분명히 영향을 미쳤을 것이므로 본 연구에서 다루지 못한 부분은 향후 연구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밝혀보고자 한다.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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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近代 中國의 博覽會 認識
제목 (타언어)
The Recognition of International Exposition in Modern China
저자
김경혜
DOI
10.24161/CHR.117.179
발행일
2018
저널명
중국사연구
117
페이지
179 ~ 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