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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대 개혁추진관서의 설치와 그 성격
초록
1880년대 개화정책의 추진을 위하여 설치했던 개혁추진기구의 면면을 시기별로 살펴보면, 먼저 1880~1882년간에는 統理機務衙門, 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 등 중앙관서가 중점적으로 설치되었으며, 1883~1884년에는 海關·監理署를 비롯해 機器局, 典圜局, 博文局, 轉運局, 郵征總局 등 가장 많은 수의 기구가 창설되었다. 그리고 1885년에는 민씨척족세력의 구심점으로 청의 간섭에 대응하는 內務府가 만들어지고, 이후의 기구들은 대부분 그 영향력 하에 창설되었다. 그 설치의 추이에서 보이는 특징은 우선 연도별로 볼 때 두 번(1883·1885)의 전성기가 발견된다. 1883년에는 총 6개가 창설되는데, 이는 기설치된 중앙관서 중심의 개화정책이 결실을 거두는 시기임과 동시에 해관 설치의 가시화 시점이 서로 맞물린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1885년은 내무부의 창설이 주된 전환점이 되어 이후로 창설되는 기구는 대부분 그 영향 하에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일정한 의미 부여가 가능하다. 주도 세력의 경우 중앙관서는 대체로 민씨척족세력이 주도하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존재하며, 1883~1884년에 집중적으로 설치된 관서들을 보면 척족세력의 영향력과 관련하여 다양한 사례가 존재한다. 벤치마킹 모델은 초기 기구에서는 청의 것에 기반했지만, 임오군란 이후 조선이 그 간섭으로부터의 탈피를 지향함에 따라 일부 특수한 경우 외에는 더 이상 운영 모델을 청에서 구하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1885년의 내무부 창설 이후 더욱 분명해지며, 그 대안으로 일본의 모델을 차용하기도 했으나, 대개는 나름의 독자적 모델을 추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키워드
- 제목
- 1880년대 개혁추진관서의 설치와 그 성격
- 제목 (타언어)
- The Establishment of the Korean Reform Promotion Organizations in the 1880s
- 저자
- 민회수
- 발행일
- 2025-07
- 유형
- Y
- 저널명
- 역사와 담론
- 호
- 115
- 페이지
- 39 ~ 74